인류가 처음 불(火)을 발견했을 때의 그 경이로움이란 아마도, 붉게 타오르는 빨강의 정열이 내 몸속을 흐르는 혈(血)의 열정과 같음에 기인하지 않을까, 그렇게 처음 색을 인지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우주 삼라만상에 스포이트로 온갖 색상들을 흡입하여 흑백의 명암만이 남겨진 세상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좀 과장된 협박을 하자면, 더 이상의 인류발전은 미뤄 두고라도 창조의 오감을 떨어뜨려 퇴행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삶속에 공기처럼 스며든 색의 존재의 고마움을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무모한 용기 따위는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무수히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있다 해도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며, 그 때 그 한계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바로 풍부한 색상들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다양한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으며, 무미건조한 삶에 배색과 조화라는 흥미로운 과제를 부여받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그 중, 색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패션에 대해 잠시 끄  적여 보자면, 매년 매 시즌 어김없이 발표되는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의상들을 보면 참으로 다양하고 화려하다. 하지만 옷을 잘 살펴보면 그 형태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옷이 사람의 몸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인으로 유행을 만들어 세상의 주목을 받는 아이템도 따지고 보면 그 형태가 원피스, 스커트, (청)바지, 셔츠, 슈트, 점퍼 등 기본적인 범주 안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물론, 디테일과 소재의 변화로 어느 정도 다양함을 꾀할 수는 있겠지만, 풍부한 색의 표현만큼 충족시키지는 못 한다.

또한 명품 브랜드마다 생산되는 아이템들도 유사함 속에 그 명품만의 고유한 색감을 입혀 유사하지 않은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 한 가지 색만 고집하는 수 십 벌의 옷장과 다양한 색을 갖춘 몇 벌의 옷장에서 매일 아침 외출 준비를 시작해 보자. 과연 어느 쪽이 패션리더라는 별명을 얻기에 유리할까? 

앞의 옷장은 아무리 디자인과 소재에 변화를 주더라도 항상 당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단짝 친구 외에는 모두들 ‘단벌신사’ ‘패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기에 충분하다. 반대로 몇 벌이지만 여러 색상들을 센스 있게 배색하여 수 십 벌 이상의 효과를 내게 해주는 컬러풀한 옷장은 나에게 패션인의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은인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상들의 조합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 정말 흥분되지 않는가? 물론 색의 사용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팽창해 가는 것이 색에 대한 공부며, 항상 주변을 맴돌며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받은 이 큰 선물의 포장도 뜯지 못한 채 바라만 볼 것인가? 일단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어 형태의 제약을 극복하는 무기이자 제품에 화려한 변화를 주는 촉매제로서의 색상들을 멋지게 사용해 주자. 진분홍, 연분홍, 흰 분홍, 노란분홍.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귀찮다고 하나의 분홍으로 묶어버리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빛날 수 있도록 색에 대한 감각을 살려보자.

 바다에 파란색이 없다면 가을 산에 단풍의 붉음과 은행잎의 노란색이 없다면 우리는 아마 바닷바람을 쐬러 가지도 산을 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두말해 무엇하랴! 색을 도둑맞는 것은 물 없이 사막에 던져지는 형국이라 할 것이다. 

이제는 색으로 치료한다. 마지막으로, 허준도 울고 갈 '컬러 테라피'라 불리는 색채 심리 치료의 세계로 잠시 들어가 볼까 한다.

김보민 이미지컨설턴트  kymass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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